간송집 (澗松集) 글자크기
서지
 
해제
   
『간송집』은 조선 중기의 학자 조임도(趙任道 ; 1585~1664)의 시문집이다. 조임도의 자는 덕용(德勇), 호는 간송당(澗松堂)이다.

이 책은 1744년(영조 20) 이광정(李光庭)의 편집을 거쳐 그의 현손 홍엽(弘燁)이 간행하였고, 목판본이다. 권두에 이광정의 서문과 세계도·연보가 있다.

시 268수 및 아래에 제시한 목록상의 글들이 수록되어 있다. 이 가운데 「사사속소(謝賜粟疏)」는 1662년(현종 3) 임금으로부터 곡식을 하사받은 데 대한 사례와 아울러 엄궁금(嚴宮禁)·친유신(親儒臣)·흥교학(興敎學)·수무비(修武備)등 시무14조, 명분·기강·사치 등 시폐4조를 열거하고, 시행책과 개혁책을 촉구한 상소문이다. 서(書)는 장현광(張顯光)·유진(柳袗)·정온(鄭蘊)·조평(趙平)·윤순거(尹舜擧) 등과 주로경전·예설에 관해 논술한 것이다.

잡저 중 「우언(寓言)」에서는 난세를 당했을 때 선비의 출처문제를 논하였고, 「잡설(雜說)」은 현자라고 해서 반드시 명성을 남기는 것이 아님을 밝힌 글로, 은연 중 자신을 비유하였다. 또, 「저익설(沮溺說)」에서는 옛날 은자 장저(長沮)와 걸익(桀溺)의 고사를 예로 들어 처세하는 방법을 문답식으로 설파하고 있다. 「기이(記異)」에서는 불교의 허탄함을 변박하였으며, 「관규쇄설(管窺?說)」에는 존성(存誠)·거경(居敬)·궁리(窮理)등 학문하는 방법과 붕당에 관한 논리 등 참고가 되는 기사가 많다. 「봉선초의(奉先抄儀)」에는 제례의식으로 시제(時祭)·기제(忌祭)·묘제(墓祭) 등 10개 조항의 의식을 간결하고 명확하게 제시하였는데, 많은 사림들의 의방(依倣)이 되고 있다. 17세기의 유학사 연구에 있어 좋은 참고자료가 된다.

이광정(李光庭)이 찬(撰)한 묘갈명(墓碣銘)에 의하면 조임도는 14세에 반천(槃泉) 김공에게 수학하여 도산(陶山)의 지결(旨訣)을 얻어듣고 존모(尊慕)하게 되었으며, 후에 여헌(旅軒) 장선생(張先生)을 사사하였다. 그의 학문이 경서를 근본 삼아서 낙건(洛建)의 유서(遺書)를 탐독하여 몸가짐이 단정하고 효행이 지극하였다. 광해군 때 정이홍(鄭仁弘)이 퇴계선생을 배격하려고 각읍 유생을 시켜 상소하려 했을 때 유공(庾公) 사(斯)의 고사를 인용하여 엄하게 거절한 까닭으로 인홍의 미움을 받아 칠원(漆原)에 피신하였다. 인조반정 후에 여헌이 등용되므로 편지하여 출처를 논하였다. 1634년(인조 12) 공릉참봉(恭陵參奉)에 임명되었으나 사양하고 1647년 대군사전(大君師傳), 1659년(효종 10) 공조좌랑(工曹佐郞)이 되었으나 모두 사임하였다. 후에 지평에 추증되고 함안의 향사(鄕祠)에 봉향되었다 한다.